▶ 도봉서원도(심사정, 18세기) Landscape painting of Dobong Confucian Academy painted by Shim Sa- jeong, 18th century조선시대 화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도봉산의 풍경과 그 안에 위치한 도봉서원을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도봉서원은 1573년(선조 6) 조광조의 덕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주로 지방에 위치한 다른 서원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서울 근교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 후기 사림의 정치적·학문적 교류공간으로 서울과 그 주변지역의 명사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1696년(숙종 22)에는 송시열이 추가 배향되었다.이후 영조가 ‘도봉서원’이라고 쓴 친필 현판을 내리면서 도봉서원은 친필 사액 서원이자 문묘에 배향된 조광조와 송시열을 모시는 최고 서원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정조도 친히 치제문을 지어 도봉서원에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0년대에 일부가 복원되는 등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쳤으나 당시 서원의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선 후기 유행했던 우리의 산천을 담아내는 진경산수화로 그려진 도봉서원도를 통해 조금이나마 당시 서원의 모습과 구조를 추정할 수 있다.▶ 도봉서원의 전각서원은 선대 유학자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서원의 구조는 크게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과 교육공간인 강학공간으로 나누어진다. 도봉서원도 속 도봉서원은 공부하는 강당이 남쪽에 있고 제사지내는 사우(祠宇)가 북쪽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보인다. 사우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유생들이 거주하는 공간인 동재(습시재, 習時齋)와 서재(의인재, 依仁齋)를 두었다. 그리고 남쪽에는 유생들의 교육 장소인 강당(계개당, 繼開堂)을 세웠다. 침류당(枕流堂)과 광풍당(光風堂)은 후대에 건립되었는데 특히 침류당은 시냇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을 가진 누각으로 서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주로 머무는 장소였다.▶ 도봉서원기(道峯書院記)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지은 도봉서원기를 통해 도봉서원의 설립 목적과 취지부터, 당시 서원의 구조까지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이이가 묘사한 서원의 구조는 도봉서원도에서도 그대로 확인 할 수 있어 도봉서원도의 정확성과 사실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 조선 사림의 학문, 정치적 구심점 도봉서원을 그린, 도봉서원도 전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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